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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흉과 군대(공익) Pneumothorax & Military Service / 2009. 11. 23 ~ 2013. 10. 24 본문

Adam's Note/Health Info

기흉과 군대(공익) Pneumothorax & Military Service / 2009. 11. 23 ~ 2013. 10. 24

Adam's Tal 2015. 4.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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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흉과 군대(공익)

Pneumothorax & Military Service

 

 

<2009년도 실제 내 폐를 CT촬영한 모습이다. 좌측 기흉>

 

 

 

 

2009. 11. 23 ~ 2013. 10. 24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조금은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가장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는 군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까...

뭔가 굉장히 긴 수필이 될 것 같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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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도 겨울이었다.

한창 키가 크고싶어 안달났던 시절이었는데

검색 포털 사이트에 '키가 크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던 

순수한 시절의 '나'였다.

 

(그 당시 내 키는 160cm 중반 정도에 몸무게가 40kg 후반 정도였을거다.

지금 생각해도 난 참 말랐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우유 많이 마시고 농구하면 키큰단다....'

뻔하디 뻔한 그런 답변이었다.

 

그 때도 알고 있었다.

우유 많이 마시고 농구하면 키큰다는 것쯤이야....

(실은 유전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 답변을 굳게 믿고 추운 겨울날 집 근처 중학교로 나가

농구공을 힘껏 던지고 집에 온 2005년 어느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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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서 티비(TV)보다가 그렇게 처음 (좌측)기흉에 걸리고 만다.

 

지금 생각해보니 겨울 방학이었다.

(학교가 아닌 학원을 다녔던 때였으니까. ^^ )

처음엔 이게 뭔지도 모르고 '억'하며 등 뒤가 너무 아팠다.

 

망치같은 걸로 '퍽'하고 짓 눌르듯이 친 것 같은 느낌? 뭔가 내려 앉았거나 터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기흉 걸려본 사람만이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일주일정도 그냥 지냈던 것 같다.

물론 아팠지만 계속 학원 다니면서 경과를 지켜봤는데, 어느 날 뛰지를 못하겠더라...

뛸 때마다 아니 걸을 때도 뭔가 가슴과 등쪽 뼈인지 근육인지 하는 부분 그 속 안이 너무 아파왔다.

 

그러다 찾은 집 근처 병원

(그렇게 큰 병원은 아니었지만 그 곳 흉부외과에 진찰을 받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병명은 '기흉'이라고 하시며

"폐에 물 찼으니 빼자"이러셨다.

 

 

 

첫 번째 '시술' : 흉관 삽관술

<2005년도 어느 겨울날>

 

시술은 간단했다.

부분마취를 했었는데 뭔가 매스로 내 살을 가르고 그 속에

튜브호스를 집어 넣는 것이 내 갈비뼈 사이로 느껴졌다.

어린 나이였기에 고작 시술만으로도 어지러움 증세가 나타나 고생 좀 해야했었다.

 

약 7일(일주일) 가량 입원해 있었다.

그러면서 호스와 연결된 통이 있는데 그 곳으로 내 폐에 찬 물(수포)를 빼내야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 방법은 '기침'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마른 기침을 계속하려니 또 할 때마다 튜브호스가 연결된 폐와 가슴이 너무 아파서

간호사 누나들한테도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딩가딩가 쉬면서 했던 기억이 있다.

4일째 되던 날, 아무 진척이 안보였던 내 CT촬영 결과를 보시곤 

의사 선생님이 "더 나아지지 않으면 수술해야겠다."하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날부터 수시로 헛기침해대며 벌건 물을 다 빼내고 나서야 폐가 깨끗해졌으니 퇴원해도 좋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때 간과했던 사실이 재발율 50%... 시술의 재발율이 상당히 높다.

 

무려 50%....

 

 

 


 

첫 시술 이후

쥐 죽은 듯이 지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하여

육상부까지 들었던 나였는데...

(중학생 때는 50m를 5초대에 주파하여 전교에서 1등이었다.)

 

기흉을 앓고난 이후

내 몸을 많이 사리게 되면서 될 수 있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였다.

격한 운동을 하던 날이면 괜히 등과 가슴에 통증이 생겨

'또 기흉에 걸린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에 휩싸여야 했다...

 

 

그렇게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름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나는 재발율 50%에 속하지 않은 럭키가이인줄 알았다. 하하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에

찾아온 군복무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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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낯선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얼른 군대 다녀오고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휴학 후 카투사에 지원한 시점이었다.

 

(번외로 카투사 지원시 내 토익 점수가 945점이었는데 보기좋게 떨어졌었다.

같은 해 지원한 800점 초반대 점수를 가졌던 과동기는 붙었었고... 역시 카투사는 운인가 보다.)

 

그렇게 떨어지고 나서

이듬 해 자원입대를 하려던 그 때였다.

 

 

화장실에서 샤워하다가 두 번째 (좌측)기흉에 걸리고 만다.

다시 말하자면 '재발'이었다.

 

처음에도 왼쪽이었고 두 번째도 왼쪽이었기에...

 

 

 

두 번째 '수술' : 폐쐐기 절제술

<2009. 11. 23 ~ 2009. 12. 08>

 

두 번째 똑같은 부위에 기흉이 재발하자 너무 우울해 했었다.

 

군 입대를 기다리던 때이기도 했고 그에 맞춰 휴학을 했던 터라

내 아까운 20살의 시간이 날아가 버린 것 아닌가.

이미 한 차례 기흉을 겪어보았기에 시술이든 수술이든 받고나서는

또 한동안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데에도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울산대학교병원 흉부외과에서 방문 진찰을 받고

'기흉'확정 판정과 함께 '폐쐐기절제술'을 받게된다.

 

(이 때까지 내 키 171cm 몸무게 50kg 초반이었다.

기흉은 마르고 키 큰 사람들에게 잘 발생한다는데... 말라서 그런가보다 싶었다.

키라도 컸으면 말을 말았지 OTL)

 

 

아래의 영상은

당시 퇴원 후 병사용진단서와 더불어 영상의학과에서 CT촬영 사진을 받아온 것이 있는데

그 사진들을 조합하여 윈도우 무비메이커를 사용해 동영상으로 편집을 해본 것이다.

 

 

 

 

 

2009. 11. 23 진찰 당시 내 폐의 모습인 듯하다.

왼쪽 폐에 수포가 차고 구멍이 난 것(폐가 터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이기에

자세히 영상을 보면 뭔가 터진 듯한 그림이 보인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내 소중한 폐가 저렇게 망가져있었다고 생각하니

'기흉'이란 놈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 당시 수술을 하자고 하셨던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폐쐐기절제술'을 받았었는데

전신 마취 후 깨어나 보니 왼쪽 갈비뼈에 구멍이 3개 뚫려있었다.

구멍까지는 아니지만 매스로 내 살을 가른 부분이 H자 모양으로 나있다.

 

<현재 내 왼쪽 옆구리 위 갈비뼈 쪽에 있는 수술 흉터이다. 2009년도 폐쐐기 절제술을 받으면서 흉터가 3개로 늘었었는데

가운데 흉터는 2005년도 흉관삽입술과 더불어 여러 차례 시술 및 수술을 겪었기에 흉터가 다른 것들 보다 진하다.>

 

 

'폐쐐기절제술'은 간단히 말해서 수포가 찬 폐의 일부분을 잘라 제거한 것인데

(의학적으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수술 뒤에는 제거하고 남은 폐 부분이 조그라든 상태이기에 이 폐를 다시 펴줘야한다.

 

그 때 사용되는 폐활량 늘리는 기구가

바로 아래 사진 속 녀석이다.

 

 

<Voldyne 호흡 연습기 : 폐활량 운동 기구>

 

 

폐활량 늘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저기 보이는 기구의 입구를 잡고 있는 힘껏 바람을 불어대면

옆 원통 안의 바가 그 입바람에 의해 위로 올라가는데

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를 다시 빨아들일 때도 똑같이 반응한다.

 

그렇게 저 기구를 사용해 폐운동을 하면 가슴 옆에 꽂혀있는 튜브호스를 통해

시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물을 빠지게 된다.

처음엔 굉장히 아픈데 계속 하다보면 통증을 즐기면서 물 나오게 하는 것에 재미를 들이게 될지도...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내 몸을 낫게 하는 것이지 않은가.

 

 

정상인이 저 기구로 폐활량 수치를 재면 평균치가 3,000 정도라고 한다. 

폐활량이 정말 좋은 사람은 한 번 불 때 혹은 들이 마실 때 저 바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최대치에서 계속 잡고 유지하는 사람도 있더라... ^^;)

 

 당시 난 목표치를 3,500으로 잡고 열심히 불어댔다.

그렇게 또 약 일주일(5~6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해 귀가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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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기흉이 재발하면 공익이라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모든 남성 기흉환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2007년도 쯤인가 그 때 법이 바뀌었단다. 그 당시엔 수술 한 번만 받아도 면제라고 하였다.

장동건도 오래되기 했지만 당시 기흉으로 군면제 받은 연예인으로 유명했다.

실제 대학 선배 중에서도 기흉으로 2006년도에 면제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2009년도 기흉을 앓기 전 이미 신검을 받았던 터라

병사용 진단서와 여러 자료를 구비해 재검사를 받으러 갔다.

 

신검 때는 몸무게 때문에 2급 판정을 받았었고

기흉 수술로 재검사를 받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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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사 결과는??

 

 

3급 현역이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던 군의관의 말에 따르면

예전과 다르게 법이 강화되어 수술 한 번으로는 현역 3급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Q) 기흉 한 번 앓았고 재발하여 수술을 받았는데 이 경우는 4급이 아닌지?

 

징병신체검사 등급검사표에 따르면

 

<병무청 : 징병신체검사 등급검사규칙>

 

A) 내 경우 2005년 흉관 삽관술(시술) 후 2009년 재발하여 폐쐐기 절제술을 받았기 때문에

검사등급표 외과 255번 기흉편 '나'에 해당하여 3급 판정을 받은 것이란다.

 

이렇게 징병신체검사 등급표도 보여주면서 얘기를 하니

수긍할 수 밖에...

 

(결국 따로 절제술 없이 시술-흉관삽관술만 한 경우에도 3급이고,

폐쐐기 절제술도 한 번만 받은 경우 3급이라는 뜻)

 


 

2009년 겨울 수술 이후

 또 한 번 쥐죽은 듯이 살았던 것 같다.

적어도 3개월은 거의 외출도 없이 집에서 요양하듯이 지냈다.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군입대도 미뤄야했고

몸 건강에만 신경썼던 시기였다.

 

그 때부터 시작한 헬스

172cm 53kg이었던 내가 몸무게 60kg이 되는 데까지

근 8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나서는 학교에 복학 후 공부에 집중하였는데...

본의 아니게 1년 휴학하면서 자연스레 한 학번 아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계속 공부하다보니 2012년도에 폴란드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게 되었다.

 

어학연수 기간 중에 느꼈던 것 중 가장 큰 후회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는데...

그 이유는 유학생활을 하다보니 더 오래 그 곳에 머물며 공부하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도 있고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귀국을 해야만 했다.

 

그 후 입대일자 본인선택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사장교로 눈이 갔고 4학년까지 다니면서

 

학점도 따고 방학중엔 영어캠프와 같은 활동도 하면서 학사장교를 준비하였다.

 

<2013년 10월 당시 내 달력 어플 Jorte에 메모된 일정

학사장교 시험과목 공부 일정으로 빼곡한 것이 보인다.>

 

2013년 10월 중순 쯤

대학교(4학년 2학기)의 끝을 학사장교 시험 준비로

눈 코 뜰새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근처 고시원에 살면서

집, 도서관, 헬스장, 학교, 집, 도서관, 헬스장만 반복하며 지냈던 것 같다.

물론 수업이 있는 날엔 학교도 갔지만 주3?이였기에

일주일의 절반 이상은 수험생 모드였다.

 

위 달력대로라면 10월 21일날 공군학사장교에 지원 접수를 했어야했다.

하지만 그 이틀 전... 토요일

전 날 헬스를 무리하게 했던지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했었다.

(물론 고시원 침대가 너무 안좋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장교로 갈것이기 때문에 체력단련을 한창 하면서 (173cm 66kg)몸 불리기 중이었는데

뛰기도 오래 뛰었고 무거운 덤벨도 많이 들었다.

또 프로틴(단백질)도 물에 타 마시면서 운동했었다.

 

그 날 참 햇살 좋은 가을 날로 기억한다.

친구와 외대앞역에서 만나 외대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얘기하다가

 

'억'하면서 (우측)기흉에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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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에서 첫 진료를 등록할 때 카드를 만들어야했다.>

 

 

 처음부터 기흉에 걸린 것을 알고있었지만 폴란드 대통령 영부인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는 주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보존적 치료를 받고자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으로 찾아가 보았다.

 

두 차례(좌측기흉) 겪어 본 기흉이었지만

오른 쪽은 처음이기에 '혹시 기흉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아간 기억이 난다.

 

의사 선생님 曰

"오른쪽 기흉이 맞고 바로 수술을 해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건가요?"

 

이에 고농축 산소 치료를 받고싶다고 하였으나

그런 방법으로 나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의사의 판단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담담하게 통화하고 난 뒤

고시원에 도착해서 혼자 침대 위에 앉아있으니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다 들었다.

 

진료를 받은 날이 월요일 이었는데

(실은 일요일에도 찾아갔었지만 응급실만 문이 열려있어 다음 날 다시 찾아가야했다.)

그 모레 수요일에 열리는 행사는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이틀을 더 아픔과 참아야하는 상황이되면서 혼자 인터넷 폭풍 검색으로 알아낸 사실.

기흉이 급성으로 변할 경우 심한 발작과 함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이런 말을 듣고 어느 누가 불안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재미난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주자면

아마 진료후 다음날인 화요일로 기억한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고시원 정문의 문을 누가 쾅쾅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문 밖에서 누가 자꾸 소리를 지르더라...

 

잠에서 깬 뒤 내 휴대전화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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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전화만 17개

아버지를 비롯해 모르는 번호로 수 통이 와 있었다.

 

그제서야 들리는

000씨 !

000씨 계세요?

여기 000씨 방이 어디죠?

하며 여러 사람들이 내 방으로 와 노크하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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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했을 수도 있지만

119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침에 연락을 하였는데 받지 않자

걱정되어 신고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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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119 구조대원들이 가고난 뒤에

또 다시 한 차례 더 112, 경찰이 와서 나를 찾았다.

 

한 번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찰나에

내 몰골을 보고는

'술 많이 마시지 마요, 부모님 걱정하니까' 이러고 가버렸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행사도 잘 마무리 짓고

울산에 돌아와 전에 수술했던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원수속 절차를 가졌다.

 

세 번째 '수술' : 폐쐐기 절제술

<2013. 10. 24>

 

 

의사 선생님이 내 오른쪽 폐를 보시고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저번과 같이 '폐쐐기 절제술'을 받기로 하였다.

 

그 때 당시 173cm 키에 몸무게가 65kg정도였는데

대부분 기흉에 걸린다는 '키 크고 마른 사람'이

난 더이상 아니였는데도 또 다시 걸렸다는 사실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몸을 좀 불리니

수술 후 회복력은 전보다 나은 것 같았다.

의학의 힘이 발전한 것일 수도 있지만 ;;

 

 

 

<2013년도 폐쐐기 절제술을 받아 생긴 오른쪽 갈비뼈 위의 흉터 3개.

왼쪽에 비해 아직까지 최근의 일이라 흉터가 선명하게 보인다.> 

 

수술을 받고 나서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하며 큰 고민에 빠져있었다.

전에 재검 당시 '수술을 받은 부위가 재발한 후

그 부위에 시술 혹은 수술을 받았을 때' 4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른 쪽 폐에 기흉이 걸린 내가 정말 불쌍하게 느껴졌다.

 

'넌 진짜 운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구나'

군대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픈 녀석이 어디있을까 싶었다.

 

 

<수술받기 전 날로 기억한다. 코에 고밀도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었다. 이 때까지는 셀카찍을 힘이 남아있었나 보다.

게다가 이 사진을 SNS에도 게재하기도... 다시 봐도 정말 미쳤었다. 부끄러운 과거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된 사실.

좌측 기흉으로 수술을 받은 뒤 오른 쪽 기흉은 '재발'로 본다는 것.

(즉, 내 경우 좌측 기흉 폐쐐기 절제술 이후 재발하여 다시 한 번 폐쐐기 절제술을 한 것과 같다.)

 

↑ 위 내용이 정확하게 맞는 말인지는 군의관이 아니기에 확답을 할 수 없지만 

위 경우가 성립한다면 아래의 경우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거의 같다고 보면된다.

 

또한

양측 흉부에 폐쐐기 절제술을 받은 경우 신체 등급 4급에 해당한다는 것.

(예방적 수술은 제외한다고 하는데, 내 경우 멀쩡한 폐를 예방차원에서 수술한 것이 아니라

재발하여 수술한 것이기 때문에 예방적 수술이 아니다.)

 

 

 그 해 재검을 받아 4급 판정을 받게된다.

 

(재검을 받게되면 그 결과가 신검때와 같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심사기간을 거쳐 2주 이상 뒤에 결과를 받게 되었다.)

 

<재검 당시>

내가 가진 질병인 '기흉'을 어떻게 앓게 되었냐고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정말 대답하기 힘들다.

 

기흉을 앓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원인불명이다. 특별한 예방법도 없다.

키 크고 마른 사람? 애석하게도 난 아닌데도 3번이나 걸렸다.  

 

 

그냥...

그럴 운명이니 생각하면 편한 것 같다.

 

 

 

이후 다시금 내 몸 건강이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과하게 내 몸을 아끼게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사회복무요원 신청때 일부러 소집 일자도 늦게 선택하면서 그렇게 1년 정도 몸 관리에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가만보면 난 대학 삼수한 것과 같이 약 2년이란 시간을 몸 관리하는 데만 투자한 샘이다.

 

 

 

난 기흉이라는 질병으로

재검을 받아 징병신체등급을 낮춰 군 대체복무인 공익근무(사회복무)를 선택하였다.

 

어떤 이들은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질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역으로 가 군복무를 하기도 한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

난 그저 조금 더 나은 내 미래의 자신을 생각했을 때 이 처럼 선택하였다.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한 고등학교에 출근하며

장애 학생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많은 책임감도 느끼고 군 대체복무 일지라도 큰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이 글은 나처럼 기흉을 앓았고 또 군복무에 대해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불특정 다수를 위해 작성해본 것이고

이 글을 보고 판단과 선택은 언제나 독자 본인의 몫이다.

 

 

 

Adam's Tal Project : 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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